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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를 돕고 머리 맑게 하는 작설차
우리는 신라시대부터 녹차를 재배하여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녹차 마시기를 숭상하여 운치 있는 다기도 많이 만들어낸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불교의 쇠퇴와 아울러 다도도 쇠퇴 하였고,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거듭되는 전화에 차를 즐기는 생활의 여유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조선시대의 실학자로 유명한 정약용 선생이 호를 다산이라고 한 것은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차를 재배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문화가 쇠퇴하는 가운데도 차를 지켜온 학자나 승려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허백련 화백도 광주 무등산에서 차의 재배와 보급에 전력을 경주한 바 있으며, 점차 차의 생산이 각지에서 시작되어 꽤 많은 양의 녹차를 일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차는 상기되는 것을 가라앉히며 소화를 촉진시키고 머리와 시력을 맑게 하며, 이뇨작용이 있고 당뇨병 등으로 갈증이 생기는 것을 멈추게 하며 졸음을 없앤다. 나무는 키가 낮은 것이 치자나무 비슷하며 겨울에 돋아나는 새 잎을 딴 것을 다라 하고 잎이 오래된 것을 명이라고 한다."
작설차는 어린 새싹이 참새 혓바닥 모양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으로 품질 좋은 차이다.
"소숙식 온난식지 작설다 역가"라는 대목도 있는데, 소하를 돕는 작용이 있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데는 작설차가 좋다는 것이다.
이런 기재만 보아도 차가 머리를 맑게 하고, 소화를 돕고, 이뇨작용이 있으며, 잠을 적게 자고도 상쾌하게 만든다니 차로서 구비해야 할 미덕은 모두 구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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