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는 술
술은 옛날부터 '백약지장'이라고도 하고 '백독지장'이라고도 하였다. 술을 마시되 도를 넘지 않게 하는 것이 힘듦을 말하는 것이니라. 또 '주유병'이라고 하여 술이 마치 무서운 병기와 같아서 다루기가 힘듦을 경계하고 있으나 하여간 술이 인생에 있어서 매력 있는 기호품임에는 틀림없어 술을 가리켜 '천하지미록'이라고 하였다.
<동의보감>을 보면 "술은 성이 대열하고 맛이 쓰고 달고 매우며,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위장 기능을 도우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근심을 없애며 노여움을 발산시키고 마음껏 지껄이게 한다. 오래 마시면 신경을 상하게 하고 수명에 해롭다. 과음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아니 하고 신경이 마비되니 이는 유독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여러 군데에서 과음의 해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술의 종류를 무려 32종이나 열거하고 있어 옛날에도 술의 품종이 얼마나 다채로웠던가를 엿볼 수 있다.
조하주 : 막걸리이며 몸을 덥게 한다.
두림주 : 검은 콩 볶은 것을 청주에 넣은 것으로 산후의 풍에 좋다.
총주 : 한기가 들 때 총백을 썰어 뜨거운 술에 담가 마시면 땀이 난다.
포도주 : 얼굴을 늙지 않게 하며 신을 따뜻하게 한다.
상심주 : 뽕나무 오디의 즙을 짜서 만든 술이며 오장을 보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구기주 : 허한 것을 보하고 살찌게 한다.
지황주 :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얼굴을 늙지 않게 한다.
무술주 : 누런개를 삶아 곤 물에 쌀을 넣어 술을 만들며 양기를 크게 보한다.
송엽주 : 각기와 신경마비에 좋다.
송절주 : 관절, 신경통에 좋다.
창포주 : 신경마비에 좋고 장수한다.
녹두주 : 사슴 머리를 삶아 곤 물로 술을 만들며 기혈을 보한다.
고아주 : 염소 새끼를 고아서 만든 즙으로 술을 만들며 살찌고 튼튼하게 한다.
밀주 : 꿀로 만든 술로 영양제가 된다.
춘주 : 음력 정월의 셋째 해일에 빚은 술. 삼해주와 비슷한 맛좋은 술.
무탄주 : 순도 높은 술.
병자주 : 찹쌀가루에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만든 술.
황연주 : 주독을 풀고 사람을 해치지 아니한다.
국화주 : 장수하고 어지럼증을 없앤다.
천문동주 : 기혈을 돕고 장수케 한다.
섬라주 : 태국에서 온 술이며 기생충을 죽인다고 한 것을 보면 도수 높은 술인 듯.
홍국주 : 술이 독하다.
동양주 : 술맛 좋기로는 자고로 천하 제일.
금분로 : 처주에서 나는 술.
그 밖에도 산동추로백, 소주소병주, 남경금화주, 진안녹두주, 강서마고주, 소주, 저주, 이화주라는 것도 있다.
심신을 젊게 : 양명주
<동의보감>이 우리나라 민족 의학의 대표적 업적으로서 이미 4세기가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국내외적으로 불멸의 광채를 발휘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자존심이 강하고 한방 의학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까지도 <동의보감>을 한방 의학의 최고 원전으로 삼고 있다.
역시 최고의 특징은 당시 번잡, 다기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던 한방 의학을 질서정연한 논리와 실증에 의하여 집대성, 체계화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현대의학이나 거의 진배없이 분과별로 나누어서 병인 병상등을 논하고 치료약의 처방 및 단방으로 사용되는 약재를 소상하게 기재하는 동시에 일일이 원전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치료법이나 약재도 삽입되어 있다. 보약으로 양명주 두 가지가 올라 있다. 술마시면서 건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를테면 요즘의 토닉제에 해당되는 것 같다.
고본주 : 피로를 풀고 허한 것을 보하고 연년익수하며 머리를 검게 하고 얼굴을 아름답게 한다고 그 효능이 적혀 있고, 처방은 생건지황, 숙지황, 거심한 천문동과 맥문동, 백복령, 인삼을 잘게 썰어서 항아리에 넣고 술을 담가 3일간 두었다가 약한 불로 한두 시간 끓이면 술빛이 검어지는데 이것을 주량에 따라 적당히 공복에 마시면 된다는 것이다.
오수주 : 벌써 이름부터 오수라고 되어 있어 수염을 까마귀처럼 까맣게 한다는 뜻인데 한방의 보약 중에는 유난히도 머리를 검게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머리가 백발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장생불로를 직접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은 현대 의학에서도 좀 더 검토해야 할 것이며 백발을 겉으로 염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옛 처방에도 염색법이 있다) 약을 내복함으로써 안으로부터 희지 않게 한다는 발상법은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수주의 효력은 고본주와 같아 굉장한 것이며 누런 기장쌀(찰기장쌀)에 맥문동, 생지황, 하수오, 천문동, 숙지황, 구기자, 우슬, 당귀, 인삼을 가루로 하여 넣고 누룩을 적당히 혼합하여 보통 술과 같이 빚어서 술을 담가 익거든 걸러서 매일 새벽 한두 잔씩 미취할 정도로 마신다는 것이니 이 아니 좋은가.
몸을 가뿐하게 : 감국화주
백초화라는 것이 있다.
"백병을 다스리고 장생신선이 된다. 백종초화를 따서 그늘에서 말려 찧어 가루로 만들어 술과 더불어 마시든지 꽃 끓인 물로 술을 담가 마신다."
로맨틱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 약효가 있을 성싶지 않은 것은 백종초화라는 것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약을 생활 주변의 화초나 산채 같은 데서 구한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같은 화학물질 공해가 범람하는 시대에 자연과 더불어 생을 즐기면서 건강을 찾는 방법이라 할 수 있고, 오늘날 점점 식용 야초나 산채에 대한 관심이 적어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뜻에서 <동의보감>의 양생보약에 나와 있는 '감국화', '국화주'등은 오늘의 생활 가운데서도 지니고 싶은 지혜라 할 수 있겠다.
감국은 우리나라 산야에 자생하는 들국화 종류이며 "몸을 가볍게 하고 늙지 않아 장수하게 하는데 새싹, 잎, 꽃, 뿌리 모두 약용이 되며 응달에서 말려 가루로 만들어 술과 같이 먹든지 또는 꿀에 환으로 개어 만들어 오래 계속해서 먹는다. 국화주는 감국화, 생지황, 구기자, 근피를 물에 끓여 낸 물에 찹쌀을 넣고 끓인 다음 누룩을 넣어 양조하는데 국화는 흰색이 더욱 좋다"라고 되어 있다.
요즘 식으로 간단히 국화주를 만들려면 소주 1.8l(한되)에 말린 감국화 200g을 넣고 설탕 또는 꿀을 150g 정도(단맛은 적당히 가감하면 좋다) 섞어 3~4주간 두어 두면 마실 수 있게 되며 오래 저장할수록 좋아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술뿐만 아니라 꽃을 차로 달여 마셔도 좋다. 원래 국화꽃은 운치 있는 존재로서 도연명의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라는 시는 너무나 유명하며, 소동파의 글에도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가을에는 화실을,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도다"라고 하여 철저히 국화를 애용하고 있다.
국화꽃이나 잎의 성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연구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정유 성분이 밝혀지고 해열작용 및 모세혈관 저항성 증강작용등이 보고되었다. 과연 국화가 어느 정도의 장생불로약인지는 규명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사지의 혈액 순환을 좋게 하며 풍에 의한 현기증과 두통을 고친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건위강장제 정도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기 때문에 <신농본초경> 때부터 이미 상약으로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 온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약용이 되는 좋은 국화는 감국화이다.
중국 궁중에서 애용하는 강정주 : 녹용주
녹용에 관한 약효를 좀더 더듬어 보면 "몽설과 설정을 그치게 하며, 근육과 뼈를 장하게 하고, 노인으로 하여금 새로 치아가 나게 하고 흔들리는 이를 단단하게 하며, 여자의 하혈과 적백 대하증을 고치며, 신허를 보하고 허리와 음부의 냉한 것을 다스린다." 등등의 지극히 매력적인 문구가 나열되어 있다.
러시아에서는 일찍부터 녹용의 알콜 추출액을 약용으로 상품화하여 판토크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날렸다. 그것 역시 약효는 일반 허약증 및 강정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분상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실험에서 부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이 있음이 밝혀지고 부교감신경의 흥분은 성기의 혈관 확대와 관계가 있어 부교감신경과 강정 효과를 서로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녹용은 강정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약학자 중에도 녹용이 혈중 콜레스테롤 양에 미치는 작용을 연구한 분이 있다. 또 녹용에 적혈구의 신생을 촉진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이 동물실험에서 밝혀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녹용의 무슨 성분이 그와 같은 약리작용을 나타내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지견이 없다. 최근 동물의 각질을 가수분해시킨 성분 가운데 생리활성이 있는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연구도 있으나 워낙 단백질 계통의 연구가 힘들다 보니 아직 뭐라고 단정을 내릴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 음식에 도가니탕, 꼬리곰탕, 족탕 등 소나 돼지의 뼈를 원료로 하는 것이 있는데 교질, 콘드로이틴, 하이알우로니테이스 등 성분이 많이 섞여 있어 농후한 미각이 문자 그대로 "생정, 보수, 강근, 건골"의 효력이 있을 성싶어 여름의 스태미나식으로 좋다. 녹각을 고아서 만든 녹각교라는 것도 녹용만은 못하지만 강장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사슴은 머리끝에서 꼬리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철두철미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피, 살, 태아, 꼬리, 힘줄 심지어는 성기와 정액마저 귀물로 치니 사슴 팔자는 참말로 기구하다고 아니할 수 없겠다.
하여간 옛날 중국의 궁중에서 가장 귀하게 애용된 강정 강장제가 이와 같은 사슴 계통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녹용주를 만드는 처방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소주 1l, 녹용 10g, 산약(서여라고도 하는 마의 지하근) 30g, 꿀 100g을 병에 담아 약 1개월만 지나면 마실 수 있는데, 어느 나라나 국민 소득의 향상과 비례하여 약의 소비도 높아지게 마련이므로 각자의 체질에 맞는 보건약을 만들어 보는 것도 생활의 이로움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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